뮤지컬 영화는 매우 호불호가 갈리는 장르이다. 대사와 노래가 절묘하게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고, 잘 알지 못하는 뮤지컬 넘버를 영화 속에서 몇 시간씩 듣는 것은 뮤지컬 애호가가 아니면 참아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레미제라블은 90% 이상 노래만으로 이루어진 sung-through 형식의 뮤지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어김없이 나오는 레파토리인 장발장 이야기가 너무 친숙해서인지, 아니면 혁명의 나라 프랑스의 자유와 평등을 향한 갈망에 감정이입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가 너무 훌륭해서인지,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그렇지만, 내가 본 뮤지컬 영화 중에 이렇게 분명하게 내용과 감동이 남았던 것은 단연 레미제라블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1. Casting - 연기는 기본이고, 노래까지 잘하는 배우님들.
맘마미아에 출연한 아만다 사이프리드 외에는 내가 아는 한 노래로 검증된 배우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큰 오해였다.
- Hugh Jackman as Jean Valjean and Madeleine: 엑스맨으로 유명한 휴 잭맨이 장발장/마들렌 역할을 맡았다. 이 분과 음악과는 전혀 연관이 없을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데 사실 휴 잭맨은 울버린 이전에 뮤지컬에서 활약하는 배우였다.
- Anne Hathaway as Fantine: 극중 코제트의 어머니, 당시 프랑스에서 가난한 여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인물이다. 실제로 삭발까지 감행해가며 인물에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래서인지 극 중 판틴이 짧은 머리를 하고 부르는 'I dreamed a dream.'은 인물의 고통에 저절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 Russell Crowe as Javert: 극 중에서 장발장과 대립하는 인물이다. 답답할 정도로 원칙주의자이며, 그것이 본인의 정의라고 생각하는 인물인데, 극 중 인물의 처지에 따라 형을 선고하는 모습에서 본인의 원칙이 정의에 가까운 것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 Amanda Seyfried as Cosette: 어머니 판틴이 생계를 위해 어린 코제트는 테나르디에 부부가 하는 여관에 맡겨지고, 판틴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어린 코제트는 이 여관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학대받으며 살아간다. 이후, 판틴이 죽기 전 장발장에게 코제트를 부탁하고, 장발장은 약속대로 코제트를 데려와 양녀로 삼아 극진히 아껴준다. 이후 마리우스와 사랑에 빠진다.
- Eddie Redmayne as Marius Pontmercy: 어릴 때부터 골수까지 왕당파인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청년이다. 원작자 빅토르 위고의 자전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후 외가의 절연으로 독립하여 지내게 되고, 아베쎄의 벗들에 가입하지만, 이데올로기 차이로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러던 그가 코제트와의 헤어짐에 절망하여 뜬금없이 시내 혁명에 가담한다.
- Samantha Barks as Éponine Thénardier: 테나르디에 부부 사이에 태어난 다섯 남매 중 장녀이다. 집이 망한 후 고생하면서 테나르디에의 자잘한 범죄를 돕거나, 집세를 구걸하며 살아가던 중 이미 코제트에게 푹 빠진 이웃집 청년 마리우스를 짝사랑하게 되는 비극의 길로 들어선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해 마리우스를 위험에 빠뜨리지만, 결국엔 그 자리에서 마리우스의 목숨을 구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2. 19세기 프랑스 국민들의 처참한 삶
영화는 그 유명한 장발장의 이야기, 빵을 훔치다 감옥살이를 하게 되어 노역에 시달리는 바로 그 이야기로 시작한다. 빵 하나를 훔친 것으로 5년형, 4번의 탈옥으로 인해 14년 추가, 총 19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다가 나온 장발장은 세상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다. 그러나 미리엘 주교의 도움으로 장발장은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고,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새 삶을 살게 된다.
한편 장발장의 공장에서 일하던 판틴은 미혼모라는 이유로 쫓겨나고, 여관에 맡겨 놓은 코제트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던 판틴은 머리카락도 잘라 팔고, 이도 뽑아 팔고, 매춘까지 하는 지경에 이른다. 극도로 몸이 쇠약해진 판틴은 장발장의 도움으로 기력을 회복하던 도중 자베르로부터 장발장이 전과자라는 소식을 듣고, 딸 코제트를 장발장에게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장발장은 고백으로 다시 옥살이를 하게 되지만, 다시 한번 탈출하여 자유를 찾고, 판틴과 약속한 대로 코제트를 지옥같은 여관에서 데려와 극진히 보살핀다. 그러나, 끊임없는 자베르의 추격으로 장발장은 또 한번 신분세탁을 하고, 수녀원에서 이번에는 코제트와 함께 새 삶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코제트와 부르주아 집안의 청년 마리우스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마리우스는 장발장의 이사와 해외 이주 계획으로 코제트와 영영 이별할 위기에 빠진다. 코제트를 잃고 절망에 빠진 마리우스는 6월 혁명 전투가 한창인 바리케이드로 향하고, 혁명에 참여한다. 전투 도중 위험에 빠진 마리우스를 에포닌이 한번 살려 내고, 또 한번 맞은 죽음의 고비에서는 장발장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한편 장발장을 끊임없이 쫓으며 괴롭히던 자베르는 마지막에 자신이 믿어왔던 가치관을 부정하게 되고, 그 동안 자신의 원칙으로 인해 고통받은 빈민과 범죄자들에게 죄책감을 느껴 투신한다.
결국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결혼을 하고, 장발장이 전과자라서 멀리 하던 마리우스는 장발장이 자신의 생명의 은인임을 깨닫고 그를 찾아가지만, 이내 장발장은 숨을 거둔다.
3. 주옥같은 음악의 대향연
이 영화를 보고 음악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뮤지컬은 더욱 좋다는 평이 많은 걸 보면, 나중에는 뮤지컬을 꼭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 뮤지컬의 넘버는 대부분 수록되었고, 'Suddenly'라는 새로운 넘버가 추가되었다.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 아닐까 싶다.
- Work Song
- I Dreamed a dream
- Look Down
- One day more
- On my Own
- Do You Hear the People Sing?
4. Other Musical Movies
한때는 뮤지컬이 오글거려서 보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첫 뮤지컬 렌트를 보고 나서, 뮤지컬이라고 다 보기 민망한 것은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뒤로는 웬만한 유명한 뮤지컬은 찾아서 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아직 레미제라블은 못보고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꼭 보아야 할 뮤지컬로 마음에 깊이 새겨 두었다.
- Mamma Mia(2008): ABBA의 노래로 구성된 뮤지컬의 영화판. 영화 초반 메릴 스트립이 멜빵 바지를 입고 나오는 게 맘에 들지 않았지만, 다 보고 나면 'The Winner Takes It All'을 이렇게 잘 부르는 메릴 스트립만이 기억에 남는다.
- Frozen(2013): 너무나 유명한 'Let it Go'가 들어간 애니메이션 뮤지컬 영화이다. 최근에야 아이 덕분에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내가 알던 디즈니가 아니구나, 그렇지만 여전히 공주는 나오는구나라는 걸 알게 해준 영화이다.
5. 혁명에 대한 영화는 언제나 가슴 뛰게 만든다.
극도로 평범한 나에게 위대한 혁명에 가담하는 일은 너무 부담스럽다. 과거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독립 투사나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 광주민주화운동에서의 투쟁 같은 일은 내가 동시대를 살았더라도 나에게는 없었을 일이다. 나의 자식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지금의 나라면 부조리와 부당함에 맞서 싸울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해 보지만, 사실 자신이 없다. 그렇기에 이런 류의 영화를 보면 더욱 감동받고, 그들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더욱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콧대 높기로 유명하고, 루브르 박물관에 전리품이 가득한 프랑스라는 나라를 존경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바로 혁명이다. 혁명으로 쟁취한 자유와 평등을 가진 나라니까, 조금은 거만해도 된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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